과일드림님께서 오늘 오후에 초대장을 보내주셔서 드디어 티스토리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약 1년정도 네이트 통을 이용했었습니다만, 좀더 무겁게 블로깅해보려는 욕구가 생기게되고나니 통으로는 부족함이 느껴지더군요. 초대장을 보내주신 과일드림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꾸벅~

예전부터 어디엔가 블로그를 개설하게 되면, 낳아주신 부모님께 바치는 글을 첫 포스트로 꼭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기니 너무 기쁘네요.

원래는 제 탯줄 사진 올리면서 한두줄짜리 코멘트 달고 심플하게 데뷔하고 싶었는데, 아뿔싸 이놈의 탯줄이 어디 처박혀있는지 보이지를 않습니다. --; 어쩔수 없이 구원투수를 찾아 책장을 뒤지다가, 극적으로 30년 전에 어머니가 쓰신 육아일기를 발견했었습니다.

제가 태어난지 열흘부터 약 일주일 정도의 분량이니, 어머니가 지금의 저보다 무려 세살이 젊으셨을때 쓰신 역사적 기록이더군요. 오우 대박도 이런 대박이 :) 보면서 얼마나 웃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우선 1976년 3월 6일 토요일 (D+12)
새벽에 굳은 변을 보면서 우리 아가가 자즈러지게 울어제꼈다.

어제는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조유에 당분이 모자라면 그런 석회변을 본다고 적혀있길래 우유를 탈때 설탕을 조금씩 더해주었는데도 차이가 없고, 오늘은 굉장히 힘이 드는지 옆에서 보기가 애처로울 정도다. 오후 3시경엔 관장을 해주니 칭얼대는것이 없어졌다.

관장액 주입량의 1/5정도밖에 안넣어주었는데도 시원스레 변을 봤다. 내일까지 기다려봐서 계속 변보기가 어려워뵐때는 병원에 데리고 가기로 맘먹다. 시립병원 입구의 홍소아과가 전문의란다.
저때는 변비가 심했나봅니다. (저나이가 다 그렇죠 뭐 쿨럭 --;)

그다음날인 3월 7일 일요일 (D+13) 이날 제 이름이 지어졌더군요.
오후 2시경이 되었는데도 변을 보지 않는다. 온통 애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인지 좀 보채는것 같기도 하고 깜짝 놀랄때 가끔 자지러지게 울어제끼는 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애는 아빠에게 맡겨둔채 홍소아과에 다녀오다. 의사말로는 인공영양아에게는 흔히 이틀씩 사흘씩 배변이 늦어질 수 있고 또 굳었다가도 제대로 나올수가 허다하니 걱정말라는 충고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되돌아왔지만, 애가 시원흐게 변을 봐야 개운할텐데...

오후에 할머님께서 작명소에서 아가이름을 지어오셨다. 진헌규라 하기로 하다.

몇일 지난 3월 10일. 70년대에 박통께서 세계의 대세인 5월1일 노동절이 아니라 3월 10일(한국노총 창립기념일)을 맘대로 '근로자의 날'로 지정했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그 날도 일기에 나와있더군요.
근로자의 날이라해서 아빠는 출근을 안했다. 새벽에 헌규가 먹은 젖을 마구 토해냈다. 변비로 인해서 토유하는것이 아닌가 염려.오전중에 또한번 토했기 땜에 갈아입을 옷이 없어 아빠가 슈퍼마켓까지 뛰어가 옷가지를 사다가 입혔다.

너무 덥게 키운 것이 아닌가해서 옷을 한가지 벗기기로 했다. 등판, 사타구니, 팔접혀지는곳 할 것 없이 땀띠같은것이 많이 솟아서였다. 유리창을 통해서지만 처음 일광욕도 시켜줬다. 이제는 엎어자는 것이 훨씬 편해하는것 같다. 예쁜 뒷통수를 가진 헌규가 큰것을 상상해본다.
흐흐 저때도 땀은 많았다는 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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